‘던전 앤 파이터(이하 던파)’는 2005년 8월에 서비스를 시작해 2020년 15주년을 지나 올 해 벌써 16주년에 접어든, 국내를 대표하는 장수 게임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서비스가 진행되면서 던파보다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게임은 NC의 리니지 시리즈와 넥슨의 ‘바람의 나라’, 그리고 웹젠의 ‘뮤’ 밖에 없고, 이들 모두 유저 충성도가 가장 높다는 MMORPG 장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던파가 얼마나 대단한 지를 알 수 있다.
아무리 RPG적인 요소가 녹아 있는 온라인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액션 베이스 기반의 게임이 이처럼 장수하고 있는 경우는 (온라인 기반의 게임에서) 전 세계적으로 봐도 디아블로 시리즈 말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유저들을 끌어 왔던 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내의 대표 온라인 액션RPG 던파가 모바일 버전의 출시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그 엄청난 시간 만큼이나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신작이기도 한데, 이를 기념하여 게임샷에서는 2편에 걸쳐 던파의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볼까 한다.
1편에서는 던파의 전반적인 히스토리를, 그리고 2편에서는 그간의 사건들과 스토리, 아이템, 던파걸 및 글로벌 수출 등의 16년 역사의 세세한 이야기들을 다룰 예정이다.
- 던파의 태동, 시작은 악평의 연속이었다?
던파가 처음 발매되었던 시기는 국내에서 3D 온라인 게임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MMORPG 일색이던 상황에서 벗어나 액션 게임이나 기타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발매되던 시절이었는데, 그럼에도 공통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바로 화려한 비주얼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던파의 등장은 솔직히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다른 게임보다 한 단계 이상 저렴해(?) 보이는 비주얼, 그리고 당시에는 잘 쓰지 않았던 횡스크롤 식의 플레이 등 당시 화려한 비주얼에 익숙했던 이들에게는 사실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던 게임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보다 잘 먹혔다. 바로 당시 게임 센터를 많이 찾았던 이들이 익숙하게 느낄 만한 부분들이 게임에 존재했던 것이다. 제작사의 복고풍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여기에 좋지 않은 사양의 PC에서도 플레이가 가능했던 점도 한 몫을 했다.
물론 특정 게임과 흡사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든 게임 센터의 게임을 플레이 하는 느낌이라는 전략이 잘 먹혔고, 대박을 내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MMORPG가 주류인 세상에서 최소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정도까지는 달성하게 됐다. 서비스 시작 후 3개월 만에 동접 3만명을 달성한 것이다.
당시 액션 온라인 게임들은 거의 빠른 시간 내에 전멸했던 만큼 던파는 다른 게임들보다 유저들의 이탈이 적었고 오히려 갈 수록 유저 수가 늘었다. 제작사로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나름 저렴한 제작비로 만든 게임이다 보니 주변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게임이 결국 해 냈다. 비주류 장르라는 장애물을 넘어 말이다.
물론 당시의 던파와 지금의 던파는 많이 달랐다. 컨텐츠도 아주 부족했고, 버그들도 상당히 많았다. 단순히 던전들을 반복해 플레이 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할 만한 것도 없었다.
2005년 당시 던파의 게임 발표회
- 그럼 이제 제대로 달려 볼까
이처럼 던파가 온라인 춘추전국시대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선까지 도달하자 제작사에서는 본격적인 역량 강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초창기의 던파는 단순히 ‘과거 게임 센터의 인기 게임 장르 게임을 온라인에서 공짜로 플레이 하는’ 정도의 메리트 밖에 없었고, 그만큼 컨텐츠가 부실했다. 그런데 여기에 던파 만의 새로운 요소들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먼저 초창기 3개 직업에 액트 1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직업 마법사를 추가했다. 새로운 캐릭터의 추가는 당시 다소 침체되어 있던 게임의 분위기를 업 시키는 역할을 했고, 이후 추가적으로 RPG적인 요소들이 게임 내에 대거 업데이트 됐다.
이를 통해 단순히 오락실용 게임을 공짜로 즐긴다는 컨셉에서 벗어나 스타일리쉬한 콤보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횡스크롤 도트 2D 온라인 액션 RPG’로 완벽한 변모를 이루게 되었는데, 당시 던파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저사양 PC에서도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했고, 별도의 과금이 없어도 그럭 저럭 플레이가 가능했다는 점이 컸다.
여기에 2D 게임 기반의 빠른 템포와 화려한 콤보를 내세운 단순한 조작과 액션이 국내 게이머들에게 꽤 잘 먹혔다. 이로 인해 올드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해 명맥을 유지하던 게임이 어느 샌가 이들보다 연령대 어린 신규 유저들이 더 많아지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올드 게임의 향수라는 말은 자연히 사라지고 스타일러시한 액션 게임이라는 말이 던파를 대변하기 시작했다.
- 메이저가 되어 버린 추억의 장르
이러한 유저들의 신규 영입과 유저들의 충성도는 갈수록 높아졌으며, 결국 서비스 개시 이래 1년 여 만에 동시 접속자 10만명이라는, 액션 RPG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더욱 대단한 점은 경쟁자들이 없던 상황에서 이루어진 거품식 몸 불리기가 아니라 MMORPG가 주류인 상황에서 던파 혼자 게임의 매력 만으로 이를 만들어 냈다는 부분이다.
물론 모든 게임이 그렇듯 던파도 한계가 존재하기는 했다. 액션이라는 장르적 한계 상 MMORPG에 비해 컨텐츠 확장이 어렵고 반복적인 플레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던파 역시 이러한 한계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를 빠른 업데이트로 어느 정도 해소하고, 아이템 파밍이라는 요소를 부각시키면서 MMORPG처럼 ‘템을 위해 반복 플레이 한다’는 개념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서 과금성이 다소 높아지기는 했지만 꾸준히 증가하는 신규 유저들로 인해 게임은 더더욱 성장해 나갔다. 이는 동접자 수 30여 만 명 이라는 결과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당시의 상황이 매우 긍정적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국내 인기 온라인 게임들의 주요 플레이 연령층이 30대 이상이었던 것에 반해 던파는 10대와 20대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부분이다.
던파의 인기는 다양한 제휴 상품까지 이어졌다
- 국내는 좁다 이제는 세계로 간다
국내에서의 인기가 어느 덧 하늘을 찌르기 시작하고 더 이상 국내에서의 성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되자, 던파는 세계를 대상으로 한 또 다른 도약에 나섰다.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과 북미 등 다양한 국가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2009년에는 한중일 동접 200만 명을 넘어섰다. 또 2010년 5월에는 전 세계 회원 수 2억 명이라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글로벌 서비스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중국 시장을 완전히 접수했다는 것이었는데, 중국에서의 인기도 인기지만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이 한국 시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보니 금전적으로나 게임의 인지도 모두 비교가 불가능한, 국내를 대표하는 온라인 액션 게임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중국 시장이 워낙 크다 보니 너무 중국 시장만 신경쓰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도 존재했지만 이러한 중국 시장의 수익을 기반으로 하여 던파의 퀄리티가 더더욱 상승한 부분은 분명 존재했고 이는 던파라는 게임 자체의 질과 양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이러한 성장은 ‘던파 페스티벌’ 같은 고유의 이벤트 등을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던파 페스티벌은 올해도 진행된다
- 영웅에게는 시련이 존재하는 법, 그런데 시련이 너무 컸다
이처럼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던파에게 엄청난 시련이 찾아온다. 바로 던파를 플레이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2011년 8월에 업데이트 되었던 ‘키리의 약속과 믿음’ 이후의 행보다.
이 업데이트의 핵심은 15강까지의 아이템 강화 시 실패했을 경우 장비 수치 감소 등의 패널티를 없애는 아이템의 등장이었는데, 사실 상 이러한 강화 시스템에서의 안전 장치는 고강화 무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원인이 되기 마련이고, 결국 엄청난 자원 소모를 통해 이룩해 냈던 그강의 고강 무기들이 이제는 국민템 수준으로 바뀌어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문제는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 업데이트가 일명 ‘고인물’을 따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되었겠지만 기존의 열성적인 유저들에게는 자신들이 어렵게 만들어 낸 재화의 가치가 추락해 버리는 결과가 되었을 뿐 아니라 높은 강화 아이템을 만들기 위한 그간의 힘든 고생이 일순간에 백지화 되었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 이벤트 이후 던파의 열성적인 유저들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던파는 최고의 위기를 맞게 되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진행된 레전더리 업데이트 등도 별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 와중에 그간 나름 탄탄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던 게임의 스토리 라인이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나마 던파 역사 상 최고의 개념패치라 불리는 ‘던전 앤 파이터 4.19 혁명 패치(날짜가 4월 19일이다 보니 4.19 혁명과 연관지어 이렇게 불리고 있다)’ 가 진행되고, 2013년 새로운 신 캐릭터 귀검사가 등장하면서 다시금 부흥할 기회를 마련했지만 ‘대전이’ 업데이트 이후 또 다시 유저 이탈 사태를 겪게 됐다. 던파 역사 상 가장 암흑의 시기이자, 힘든 시가가 바로 키리의 약속과 믿음 업데이트를 시작으로 '대전이' 업데이트 초창기 까지다.
-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렇듯 유저들이 급감하면서 한 차례 위기를 겪은 던파였지만 다시금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Y 디렉터가 새로이 던파의 수장으로 취임하면서 그간의 문제점들을 하나 둘 씩 수정해 가기 시작했고, 나름 하드코어한 콘텐츠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암흑기의 상처들을 조금씩 치유해 나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조금씩 정상화가 되어 가고, 시즌 5를 지나 6시즌까지 그런대로 안정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던파의 최고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면 분명 아쉬움은 있었지만 국내 온라인 액션 RPG 1강의 자리는 굳건했고 PC방 점유율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K 디렉터가 새로이 취임하면서 또 다른 2차 암흑기가 시작된다. 특정 직업군을 밀어주는 듯한 패치나 운빨에 의해 결정되는 아이템 입수 등 K 디렉터는 처음의 포부와는 다르게 그간의 던파 스타일에 반하는 방향성을 보여주며 유저들에게 상당한 실망감을 안겼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18년 말에는 PC방 점유율이 1% 대로 떨어지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 그래도 던파는 던파다
그럼에도 던파는 아직도 굳건하다. 2018년 2차 시련을 포함한 이슈로 포트나이트에 밀려 게임 매출 순위 2위에 머무르기는 했지만 2019년 상반기 다시금 1위에 올랐으며, 지금까지도 안정적으로 매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의 시즌 7 업데이트의 내용을 보더라도 다시금 원래 던파의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고, 그만큼 어느 정도의 몸집은 잘 유지하고 있다. 말이 몸집 유지이지 15년이 넘은 게임이 이 정도 모습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인데, 그렇다 보니 지난 두 번의 사건이 없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또한 무작정 돈을 써야 강해지는 구조가 아니라 돈을 쓰면 성장이나 아이템 획득이 더 빨라지는 식으로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있고, 무과금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걸릴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형태는 아니다.
2019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규제와 중국 내 던파 인기 감소로 인해 매출 면에서는 확실히 감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 디아블로2 리저렉션의 등장으로 인해 PC방 점유율에서는 조금 하락한 부분이 있으나 2021년 10월 기준 2% 대를 유지하고 있고 일부의 우려와 달리 앞으로도 안정적인 서비스가 이어질 듯 보인다.
물론 현재는 16년이 지난 만큼이나 국내 유저 수나 매출 면에서 어느 정도 체급이 감소한 부분은 있지만, 어쨌든 던파는 참으로 대단한 게임이다. 출시 후 1년 만에 급성장 했고, 온라인 액션 RPG 장르가 이만큼 성공했다는 점도 가히 레전드라 할 수 있다. 분명 시련이 있었고, 이로 인해 규모가 감소한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까지도 현역 인기 게임으로 당당히 서비스 되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말이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