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후인 2월 27일, ‘독립국가연합 리그(LCL : League of Legends Continental League)’ 사무국은 리그 3주차 일정에 대한 연기를 발표했다. 또한 LEC 7주차 경기의 러시아어 중계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3월 초, 또 다시 일정을 연기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 문화적인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여파는 게임에 보다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 관련이 있는 e스포츠의 경우 많은 대회들이 연기 또는 중단되고 있으며, ‘모든 러시아 계정과 벨라루스 계정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이들 e스포츠 팀의 대회 참가를 제한해 달라’ 고 전 세계 게임업체에 호소한 우크라이나 미하일로 페도로프 부총리의 성명 이후 게임 업체들도 앞 다투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이다.
말 한마디로 많은 기업을 움직인 페도로프 부총리
이번 전쟁으로 일정 연기 사태를 맞은 LCL은 구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독립국가 연합’ 일원들이 주축으로 활동하는 LOL 리그다.
그만큼 활동하는 선수들 역시 연합의 주축인 러시아 선수들이 대부분이고, 2014년 러시아와의 불화로 연합을 탈퇴하기는 했지만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들도 다수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독립국가 연합 자체가 러시아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곳이고, 우크라이나 역시 이곳에 어느 정도는 연관이 되어 있는 곳이다 보니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리그라 할 수 있는데, 그렇다 보니 팀 내에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들이 속해 있는 팀들도 많다.
일례로 LCL 소속 ‘원 브레스 게이밍’ 의 경우 러시아 선수 3명과 우크라이나 선수 1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이들이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또한 실제 경기에서도 돌발적인 행동이 발생하거나, 정치적인 행보를 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기에 이러한 일정 연기는 오히려 당연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상 LCL의 리그 진행은 불가능해 보이며 더 나아가 올 해 리그가 취소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고로 LCL은 국내 롤팬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리그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롤챔스를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플레이 인 스테이지에 간간히 등장하는 ‘유니콘스 오브 러브’ 가 바로 이 리그 소속이다. 21년 MSI 역시 이 팀이 독립국가연합 소속으로 참가했고 말이다.
다만, 리그 자체를 평가하자면 실력은 좋지만 운영이나 기반이 매우 막장인 리그라 정의할 수 있다. 지역의 대표적인 강자인 유니콘스 오브 러브 및 참여 팀들이 실력 수준이 제법 높은 편이어서 리그 자체의 실력만 평가한다면 VCS(베트남 리그) 및 TCL(터키 리그)와 함께 마이너 리그의 3대장이라고 해도 될 정도지만 워낙 운영이 막장을 달리고 있고, 2군 리그도 없으며 인프라도 열악하다.
심지어 2021년에는 라이엇 러시아가 대회 상금을 배분하지 않아 선수들이 이를 폭로하는 사건도 있었고, 2019년에는 승강제가 폐지되자 ‘Vaevictis eSports’ 에서 흥행을 위해 모든 선수들을 여성 유저들로 채우는 전무 후무한 일도 있었다. 당연히 결과는 2년 동안 전패. 심지어 워낙 실력 차이가 나자 해당 팀과의 게임을 즐겜 모드로 플레이 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속적인 운영난으로 Gambit Esports 같은 명문 팀들이 해체되는 결과를 맞이하기도 한 곳이다.
이처럼 리그 자체도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발발하게 되자 일각에서는 리그 해체 이야기도 솔솔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최근 여러 게임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우크라이나 미하일로 페도로프 부총리의 호소 이후 수많은 게임 업체들이 실질적인 ‘러시아 제재’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EA 스포츠는 자사의 피파 시리즈와 NHL 시리즈에서 러시아 팀을 삭제하기로 결정했으며, 러시아 소속 e스포츠 팀들을 자사 게임 대회에 출전시키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한 블리자드는 자사 모든 게임의 판매를 중단했으며(아직까지 배틀넷 등의 접속이나 e스포츠 대회 출전 금지까지는 하고 있지 않다), 소니는 신규 게임 및 영화 개봉을 금지했고, 에픽 게임즈는 러시아에 대한 게임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인텔과 엔비디아 또한 자사 제품의 러시아 판매를 중단했다. 심지어 유비소프트는 게임 판매 중단에 아예 사업을 철수하는 강수를 뒀다. 언급한 게임사들 외에 수 십여 개의 업체들이 저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러시아 판매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제재 방안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제재는 갈수록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반해 국내 게임사들의 행보는 다소 미지근한 상태인데, 카카오가 42억원 규모의 기부를 진행하고, 펄어비스가 간급 의료지원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하는 등의 일부 행보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대단위 적인 게임 관련 제재나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게임 관련 제재는 e스포츠와 관련해서도 일어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EA의 제재 외에도 최근 다양한 곳에서 러시아 팀을 배제하거나 최소한 러시아 국적 팀들의 마크 및 팀명을 삭제한 채 경기 진행을 할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ESL ‘카운터 스트라이크 : 글로벌 오펜시브’ 대회에서는 자사의 대회에 갬빗의 참여를 금지했고, 버투스 프로는 팀명을 삭제하는 대신 다른 이름으로 참여를 하는 상황이다. 얼마 전 진행된 IEM 16 시즌에서는 대회 진행 중 불안감을 느낀 선수 및 팀 일부가 대회 일정을 포기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방송 상에서 러시아어를 배제하는 분위기도 일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LEC 경기에서 러시아어 중계가 삭제되었으며, ‘게이머즈 갤럭시: 도타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는 러시아어 대신에 우크라이나 공식 중계를 추가했다.
이러한 대처는 급작스러운 전쟁 발발로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임기응변 식으로 진행된 부분이지만 앞으로의 e스포츠에서는 러시아 팀이 완전히 배제되는 경우가 보다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게임 및 e스포츠에서 러시아를 배제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 있으나(선의의 피해자만 양산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를 통해 폭 넓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알릴 수 있고, 전 세계가 전쟁 종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앞서 언급했던 LCL 문제에 대해 과연 라이엇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는 알 수 없지만 LCL 해체도 분명 주요 고려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러시아 팀의 롤챔스 진출도 사실 상 불가능하다.
아직까지는 게임 접속 차단 등 강경한 대응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반응을 보건대, 라이엇이 보다 강력한 러시아 제재를 할 일은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라이엇이 중국 회사이다 보니 제재하기가 껄끄러울 것’ 이라는 말도 나오는 모습.
현재 라이엇 게임즈는 3월 12일까지 판매하는 ‘벌이다!’ 스킨 시리즈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동유럽의 인도적 구호 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아마도 라이엇은 이 정도 선으로 마무리를 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중국 텐센트로 넘어가기 전 라이엇이었다면 이것으로 끝일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소 실망스러운 행보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라이엇의 행보와는 다르게 많은 LOL 팀들은 평화를 촉구하는 행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 많은 유럽 및 북미 지역의 인기 팀들은 2월 말 ‘평화를 지지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함께 하며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무고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 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이들은 자신들의 로고를 우크라이나 국기 색인 노란색과 파란 색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다.
이와 더불어 각종 SNS에는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 및 팀들의 평화를 호소하는 글들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수 많은 e스포츠 선수들의 우크라이나 지지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많은 게임 기업들과 구단, 관계자들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며 러시아를 압박,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행보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고 그 강도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반면 아직까지 한국 기업이나 e스포츠 팀들의 참여는 저조한 편이다. 판단은 당사자의 몫이기에 이를 강요할 수도,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부분이겠지만 가급적 국내에서도 보다 많은 참여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빠른 종식에 기여했으면 한다.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